교회들은 상처를 크게 입고 쇠퇴, 혹은 분열, 그리고 새로운 부흥운동의 계기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교회의 문제들을 우리에게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거울과 같은 책이 있는데, 그것은 주후 55년경에 씌여진 고린도교회 보내어진 편지에 나와 있는 바울의 글이다.
고린도교회는 세상에 나
▶비판
- 고후 2:4절의 문맥을 보면 눈물로 편지를 쓴 이유는 고린도교회내에 사도바울의 마음을 아프게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인것을 볼수있다. 하지만 고후 10-13장의 편지를 쓴이유는 다수의 사람때문인것을 볼수있다. 즉 전제가 다르다는 것이다. 한사람을 전제로, 다수를 전제로
- 고후 1-9장과 10-13
고린도전서 1:18절에도 말씀하는 것처럼 십자가의 도를 미련한 것으로 보는 어리석음이 성도의 삶의 모습 속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필자 이러한 현대교회의 모습을 가리켜서 살았으니 실상은 죽은 아무 힘이 없고 능력이 없이 빈껍데기에 불구한 교회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복음에 능력을 가져야 할
1. 바울과 고린도교회와의 관계
바울의 서신들과 사도행전에 근거한 바에 의하면, 예루살렘의 사도 회의 이후 유럽 선교에 나선 바울은 마케도니아의 데살로니가에서 베뢰아와 아덴을 거쳐 년 초에 고린도에 도착한 후 얼마 동안 머물며 교회를 설립했음이 확실시된다. 바울은 처음 고린도에 “두
고린도전서” 도서출판: 횃불
또한 ꡐ사람ꡑ은 흔히 그러하듯이 “누구든지”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F.W 그로샤이데 성경주석 뉴인터내셔널 “고린도전서” 서문강 옮김, 생명의 말씀사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는 뜻은 헬라어로 배 밑에서 노젓는 이, 또는 일반 선원을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주셨다. 이 책을 통해 바라본 그리스도의 영성, 바울이 강조하는 영성을 통해 나를 비춰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 책에 나타나 있는 고린도교회의 모습을 통해, 한국 교회를 현 주소를 보고, 바울이 그들에게 끊임없이 호소하였던 그리스도의 참된 영성과 뜻을 우리 또한 듣고 깨닫고 고침받길 기대한다.
교회를 올바로 세우시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은사는 개인의 사생활에 유익을 위함이 아니며 절대적으로 은사 받은 자가 교회의 지체로서 유익되게 쓰임 받도록 하심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 교회를 이루는 회중은 몸 된 교회의 지체이다. 그런데 교회의 각 부분에서 합당한 역할을 잘 감
2) 저작 연대와 장소
이 편지는 바울이 그의 제3차 선교여행을 끝마칠 무렵, 곧 주후 57년경에 기록되었다.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의 끝무렵 고린도교회에서 석달을 머무는 동안(행 20:3) 로마교회를 향하여 편지할 계획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로마교회는 당시 사도들로부터 직접적인 가르침을 받지 못
교회 안에 존재하는 ‘신비주의적인’ 경향과 닮아 있다. 신비함을 지나치게 추구한 고린도교회와 같이 그리고 목회서신의 수신자들과 같이 한국교회 안에는 영적 은사에 대한 다소 과도한 열정이 존재한다. 물론 영적인 은사는 중지된 것이 아닌, 지금도 여전히 성경대로 존재하여 교회에 덕을 세우
고린도 전서 15장의 ‘복음선포’ 내용(Kerygma)을 고린도교회의 이단(육체적 부활을 거부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론으로 제시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고전 15:12)에 나타난 이단